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덫-칠하는 삶
| 작가 : 백진숙 | |||
| 분류 : 개인전 | 장르 : 서양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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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기간 : 2026.06.20 ~ 2026.06.29 | |||
전시 개요
갤러리담은 비랑(緋筤, 백진숙)의 개인전 《덫-칠하는 삶》을 개최한다. 비랑은 한지, 유지, 도자 등 한국 전통 재료의 물성에 깊이 천착하며, 먹과 분채, 바느질이라는 이질적 행위를 하나의 화면 안에 구성하는 작가이다.
이번 전시는 불태워야 했던 편지가 재가 되는 대신 "검은 광물"로 응고된 경험에서 출발한다. 사라지길 바랐으나 사라지지 않고 새로운 사물로 변주된 그 편지처럼, 작가는 의도와 생각이 다른 길을 내는 창작의 속성을 응시하고 있다. 읽을 수 없게 조각난 언어들, 그 언어를 지우고 덧씌우고 이어 붙이는 반복적인 행위—이것이 이번 전시가 말하는 ‘덫-칠’이자 ‘덧칠’의 이중 의미이다.
화면에는 자연과 문명, 기억과 망각이 교차한다. 장지와 유지 위에서 먹으로 그려진 버드나무와 불상, 서양 조각상과 야생의 식물군이 분채의 옅은 채색과 뒤섞이며 몽환적인 풍경을 이루고 있다. 도자 작품들은 탑과 촛대, 인물상의 형태로 공간 안에 배치되어 회화와 입체가 하나의 세계 안에서 공명하도록 한다. 한지와 유지를 잇고 바느질로 꿰맨 가변 설치 작업은, 해체된 문장들이 물질의 몸을 입고 공간 위를 유랑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작가는 김영민의 문장—"인생의 아름다움은 생활을 낱낱이 구제하는 데 있다"—을 인용하며, 파편들을 새로운 의미의 성좌로 배치하는 벤야민적 실천을 이번 전시의 정신적 토대로 삼는다. 읽을 수 없는 문장들이 물질의 몸을 입고 누군가에게 가만히 닿기를 바라는 마음—그것이 《덫-칠하는 삶》이 관람객에게 건네는 조용한 초대이다.
작가의 글
덫-칠하는 삶
건네준 이가 열어보지 말고 간직하다 불태우라고 한 편지가 있었습니다. 몇 달을 몸에 지니다 한 줌 재로 흩어지길 소망하며 아무 날 불을 붙였습니다. 너무 무거워졌던 걸까요. 그것은. 정방형의 미라가 되어 검은 광물로 내려앉았습니다. 사라지지 않고 변주를 택한 편지는 제 생각을 비껴가며 새로운 사물이 되어 여정을 이어갑니다.
이번 작업의 초입에는 기별과 소식을 담은 듯 낮게 깜빡이는 세상의 이웃들에게 편지를 쓰는 마음이 컸습니다. 그러나 어느덧 의도와 생각들은 다른 길을 내고, 편지는 읽을 수 없게 조각나 버렸습니다. 결국 덫이 되고 마는 내가 흩어진 자리에, 무한히 덧칠하고 쌓고 잇는 행위들만이 남았습니다.
“인생의 아름다움은 생활을 낱낱이 구제하는 데 있다. ‘파편들을 새로운 의미의 성좌로 배치하는 데(벤야민)’에, 누더기와 못난 것들에게 새 이름을 붙여주는 데에 있다.” (김영민)
덫-칠과 덧칠의 반복만이 남은 읽을 수 없는 문장들이 물질의 몸을 입고 누군가에게 가만히 닿기를 바래봅니다.
이번 전시는 불태워야 했던 편지가 재가 되는 대신 "검은 광물"로 응고된 경험에서 출발한다. 사라지길 바랐으나 사라지지 않고 새로운 사물로 변주된 그 편지처럼, 작가는 의도와 생각이 다른 길을 내는 창작의 속성을 응시하고 있다. 읽을 수 없게 조각난 언어들, 그 언어를 지우고 덧씌우고 이어 붙이는 반복적인 행위—이것이 이번 전시가 말하는 ‘덫-칠’이자 ‘덧칠’의 이중 의미이다.
화면에는 자연과 문명, 기억과 망각이 교차한다. 장지와 유지 위에서 먹으로 그려진 버드나무와 불상, 서양 조각상과 야생의 식물군이 분채의 옅은 채색과 뒤섞이며 몽환적인 풍경을 이루고 있다. 도자 작품들은 탑과 촛대, 인물상의 형태로 공간 안에 배치되어 회화와 입체가 하나의 세계 안에서 공명하도록 한다. 한지와 유지를 잇고 바느질로 꿰맨 가변 설치 작업은, 해체된 문장들이 물질의 몸을 입고 공간 위를 유랑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작가는 김영민의 문장—"인생의 아름다움은 생활을 낱낱이 구제하는 데 있다"—을 인용하며, 파편들을 새로운 의미의 성좌로 배치하는 벤야민적 실천을 이번 전시의 정신적 토대로 삼는다. 읽을 수 없는 문장들이 물질의 몸을 입고 누군가에게 가만히 닿기를 바라는 마음—그것이 《덫-칠하는 삶》이 관람객에게 건네는 조용한 초대이다.
작가의 글
덫-칠하는 삶
건네준 이가 열어보지 말고 간직하다 불태우라고 한 편지가 있었습니다. 몇 달을 몸에 지니다 한 줌 재로 흩어지길 소망하며 아무 날 불을 붙였습니다. 너무 무거워졌던 걸까요. 그것은. 정방형의 미라가 되어 검은 광물로 내려앉았습니다. 사라지지 않고 변주를 택한 편지는 제 생각을 비껴가며 새로운 사물이 되어 여정을 이어갑니다.
이번 작업의 초입에는 기별과 소식을 담은 듯 낮게 깜빡이는 세상의 이웃들에게 편지를 쓰는 마음이 컸습니다. 그러나 어느덧 의도와 생각들은 다른 길을 내고, 편지는 읽을 수 없게 조각나 버렸습니다. 결국 덫이 되고 마는 내가 흩어진 자리에, 무한히 덧칠하고 쌓고 잇는 행위들만이 남았습니다.
“인생의 아름다움은 생활을 낱낱이 구제하는 데 있다. ‘파편들을 새로운 의미의 성좌로 배치하는 데(벤야민)’에, 누더기와 못난 것들에게 새 이름을 붙여주는 데에 있다.” (김영민)
덫-칠과 덧칠의 반복만이 남은 읽을 수 없는 문장들이 물질의 몸을 입고 누군가에게 가만히 닿기를 바래봅니다.
전시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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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칠하는 삶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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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칠하는 삶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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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칠하는 삶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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